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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6. 7. : 독일 + 메르헨 + 스트라세
독일 메르헨스트라세와의 인연. 2016년 3월, 당시 아는 교수님 연구실에 잠시 기거하며 우연히 알게 된 메르헨스트라세 협회에 무작정 메일을 보냈고, 6월 말 학기를 마치자 마자 독일로 날아가 그들을 만났다. 그렇게 첫 만남을 준비하던 시절, 한글로 된 자료도 마땅치 않았지만, 사실 그 자료를 어떻게 접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맨땅에 헤딩하듯 좌충우돌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처음 카셀을 찾았었고, 처음으로 독일 사람들과 사업얘기도 해봤으며, 독일의 한복판에 떨어져 인터넷에서 프린트한 지도 한 장과 여행책자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던 기억이 아련하다. 돌이켜 보면 그저 스치듯 찾아 온 우연이 이후 나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인연으로 이어지며, 메르헨스트라세에 관한 논문도 쓰고, 참가도시들의 AR로컬앱도 함께 만들었으며, 이런 크고 작은 결과물로 여기저기 국내 지자체를 대상으로 컨설팅도 다니며 지난 8년을 보냈다.
처음 카셀과 메르헨스트라세의 도시들을 하나씩 정복하듯 찾아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지금은 아는 독일 사람들과 기관들 또한 많이 늘어났다. 특히 지난 겨울 코로나 봉쇄가 풀리자마자 학생들을 데리고 메르헨캠프를 진행하게 되면서 이젠 사업적으로도 구체적인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메르헨스트라세와 주변의 왠만한 도시들은 충분히 혼자 찾아다닐 정도가 되었지만, 그림형제와 독일 메르헨에 관한 새로운 면면을 접할 때 마다 그 맛의 깊음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 카셀의 그림형제박물관은 매 순간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자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제공해주는 상상력의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
-. 그림형제와 독일 메르헨
그림형제박물관(Grimmwelt)은 그림형제가 17-8세기 구전되고 있던 독일 메르헨을 채록하고 이를 문서로 기록했던 자료들을 포함해서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메르헨’ 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초창기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림형제의 첫째인 야곱 그림이 마부르크 대학 시절부터 독일 메르헨과 관련된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후 카셀 공국 궁중사서로 일하게 되면서, 북부 헤센 지역을 중심으로 떠돌던 메르헨을 본격적으로 기록물로 취합하기 시작하였는데, 초창기 야곱이 채록한 메르헨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꽤나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야곱이 메르헨을 기록하기 시작한 동기가 독일민족의 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해서였고, 가장 독일다운 모습을 문화원형 그대로 담기 위해 이처럼 작업했다고 하는데, 독일 메르헨이 단순히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전역에서 유행하던 이야기들과 비슷한 원형과 플롯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러한 의도는 상당히 희석되었다고 한다. 이후 동생 빌헬름은, 형이 모았던 내용들을 순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어린이와 가정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들로 각색하게 되었고, 1812년에 책으로 출간하게 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어린이 동화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의 결과물들이 그림형제 박물관의 메인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동화를, 어린 시절부터 그림(illustration)으로 그려진 동화책으로만 알았던 나에게, 어쩌면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은 처음부터 너무도 생경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처음 메르헨스트라세를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즈음, 물론 그림동화의 그림이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닌 가문의 이름이었다는 정도를 알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이 뭐길래, 독일의 지자체들이 그 테마를 공유하며 공동체를 구성하고 운영하고 있는지 쉽게 공감하지 못했었다. 또한 우리에게 서양의 동화책으로 익숙한 안데르센동화나 이솝우화처럼 특정인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 그림동화는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모아 이것을 특정 목적에 맞게 각색한 이야기 집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독일 사람들에게 그림형제는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책을 만든 사람들의 의미보다는, 근대 독일 학문의 근간이 되는 사전을 편찬한 언어학자이자 민속학자로 인식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림형제 박물관에 18-9세기 문화사를 중심으로 전시되어있고, 역시 그 중심에 그림형제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림형제는, 우리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어느 날 한글 자모를 새롭게 발명했다는 차원으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당대 우리 사회의 일원들이 쓰고 있던 언어를 표준화해 이를 문자화 시켰다는 측면에서 그 업적을 높이 사고 있는 것처럼, 아마도 독일인들은 그림형제를 우리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을 추앙하는 수준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그림형제박물관은 제 1섹션에 초창기 그림형제가 메르헨을 수집하고 책으로 편찬하는 과정, 그리고 이 책이 전 세계로 전파되어지면서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에 관해 독일 알파벳에 맞추어 그 과정과 의미를 구분하면서 전시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행적에 따라 독일의 근대학문의 초석인 사전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그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전시하고 있다. 제 2섹션은 현재 그림동화가 전세계적으로 어떤 영상물로 어떻게 활용되고 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림동화 속 이미지들을 아이들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 섹션은 그림형제 일가의 일원인 에밀 그림의 그림을 중심으로 18-9세기 당대의 문화사를 시대상을 보여주는 코너로 진행하고 있다.
최첨단의 기기와 독특한 기법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지향하고 있는 몇몇의 박물관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림형제박물관은 일견 소박하기 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뭣이 중헌디?’ 의 관점에서 이들이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을 담담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백화점식 구성과 나열로 복잡한 시대구분을 통해 넘쳐나는 내용들을 전시하는데 집중하는 모습들과 비교해, 그림형제박물관은 당대 그림형제의 세계관과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스스로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지금 그림형제가 그들의 일상 속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나름의 해석을 덧붙일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역사문화자산을 바라보고 다루는 방식이 단순히 역사를 과거의 시간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를 바라보면서 다시금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와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고, 이를 지금과 연결시키려는 노력들을 지속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역사를 박제된 유물의 관속에서 꺼내 지금의 일상 속에 숨 쉬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그림형제박물관은 19세기 그림형제가 살았던 시대의 자화상을 멀리서 찾아 온 이방인에게 보여주면서, 같은 공간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면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들고 있으며, 독일 메르헨스트라세와 그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새롭게 하고 있다. 이제 그림형제박물관이 보여주는 19세기 그림형제의 일상을 통해, 독일 메르헨스트라세를 독일 사람들의 일상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20세기 그림형제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 독일 메르헨 스트라세
전통적으로 제조업 기반의 산업들이 융성했던 독일은, 1945년 이후 전쟁으로 무너진 산업적 기반을 대체할 방법으로 많은 도시들이 문화도시로 이미지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 영토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4분할되어 지배되던 시절, 지역별로 산재되어 있던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점령군의 문화가 뒤섞이면서 19세기 독일 통일 이전과는 또 다른 혼란스러움이 팽배하고 있었지만, 개별도시의 산업적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문화도시로의 새로운 브랜딩 작업은 어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지 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역에 거주한 미군들이 주말에 여행을 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을 개발한다는 목적에서 1950년에 처음으로 로만틱가도가 선포되어졌다. 현재 독일은 150여개의 크고 작은 테마가도가 운영 중인데, 이는 개별도시들의 문화 도시 브랜딩에 대한 관심과 독일의 오래된 도시연합의 전통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문화관광 인프라가 강한 유럽 내 다른 국가들에서는 보기 힘든 도시연합 형태의 공동 문화관광 상품 개발 또한 문화관광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약한 독일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공동의 이슈가 생기면 일단 조직을 구성하고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는 가장 독일스러운 모습으로 이 또한 발전해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모습들이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 공동체의 문제해결 방식마저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독일 메르헨스트라세는 1973년도에 슈타이나우에서 선포식을 갖고, 1975년도에 공식 출발하였다. 복수의 지자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테마를 선정하여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에 참여하는 도시들이 공동의 테마를 공유하면서 차별적인 도시마케팅을 진행하는 면면은 여타의 테마가도들과 그 모양새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북부헤센의 중심도시 카셀은 1955년부터 도큐멘타라는 문화브랜드를 만들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도시마케팅을 진행하여 왔는데, 이에 덧붙여 카셀이 가진 또 다른 문화자산인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 관련 기록물을 활용한 문화마케팅을 60여 지자체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60여 지자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와는 행정적인 제도가 사뭇 다른 독일의 도시구조를 살피다 보면, 600여 km에 이르는 메르헨스트라세에 카셀을 중심으로, 하나우, 마부르크, 하멜른, 브레멘과 같은 주요 거점 도시들이 있고, 이들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 중소도시들이 함께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림형제와 독일 메르헨 관련 테마를 공유하면서 이것들을 참여 도시들의 개별마케팅과 연결시킨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쨎든 지난 50여 년 동안 처음 만들어진 큰 틀 속에서 그 모습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메르헨스트라세는 처음의 도원결의에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그 의미를 연결하려는 노력이 더해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16년 7월, 처음 메르헨스트라세 협회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무총장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이야기는 메르헨스트라세의 세 가지 테마구성 포인트이다. 첫 번째 구성 포인트가 그림형제의 일대기, 두 번째가 독일 메르헨의 지역적 배경, 그리고 마지막이 참가도시들의 개별마케팅과 연결하는 것이란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그림형제는 18세기 말 하나우에서 태어났고, 이후 슈타이나우로 이주하여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형 야곱이 먼저 카셀로 떠나 이모집에서 생활을 하다가 마부르크 대학에 진학해 그곳에서 몇 해를 보내게 된다. 후 카셀로 돌아와 궁중사서로 일하게 되면서 동생인 빌헬름과 함께 살면서, 평생의 과업인 독일메르헨 채록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후 괴팅겐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게 되면서 하노버로 넘어오게 되는데, 이 시절 하노버 국왕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게 되면서 하노버에서 추방되고, 말년을 동생 빌헬름과 함께 베를린에 거주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렇듯 그림형제가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거쳐 갔던 도시들이 메르헨스트라세의 첫 번째 테마 구성 포인트가 된다. 실제로 베를린은 그림형제의 무덤이 있고, 인생 말년을 보낸 도시로 메르헨스트라세와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메르헨스트라세가 선포될 당시 베를린은 동독 지역에 속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하나우, 슈타이나우, 마부르크, 카셀 등이 그림형제 일대기에 관련된 테마로 메르헨스트라세에 참여하고 있으며, 또한 개별 도시 단위로 차별적인 도시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테마구성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짚어 봐야 할 포인트이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독일 메르헨은 지역적 배경을 가지지 않는, 그야말로 17-8세기 독일 지역에 구전하던 민담이다. 이 또한 당시 격변하던 시대상에 맞춰, 많은 유럽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로 인해 강제로 추방이나 이주를 해야 했던 상황에 비추어, 문화적으로 유럽 내 여러 지역의 이야기들이 섞여져 전해졌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미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이러한 구비문학을 먼저 책으로 출간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독일보다 2-300년 앞서 이야기책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그림형제의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특정 지역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이다. 하지만 두 번째 테마구성 포인트는 구전되던 독일메르헨이 책으로 만들어지고, 이후 전 세계로 전파되어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어찌 보면 이것이 현재 메르헨스트라세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림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메르헨’은 1812년에 출간되어지고, 19세기 중반 영국으로 전해지면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는데, 아마도 당시 영국의 왕을 하노버왕국의 왕이 겸직하게 되면서 영국인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문화로 여겨졌던 사회적 배경도 한 몫 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쨎든 이후 이 책은 영국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되게 되었고, 이후 20세기 초,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이 되면서,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사실 이 과정에서 그림형제의 독일 메르헨은 더 이상 독일의 역사문화자산이라기 보다는, 그저 디즈니사의 창작물로 국적이 없는 영상물로 받아들여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련의 제작 과정을 통해 창작자들이 지정한 카셀 인근의 트렌델부르크와 자바부르크의 성이 라푼첼과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살았던 곳으로 특정되면서 그대로 독일 메르헨의 지역적 배경이 되어버렸다. 사실 독일의 오래된 도시들은 대부분 중세시대의 역사문화자산을 간직하면서, 오래된 성(schloss)과 교회(kirche), 그리고 주변에 숲(wald) 정도는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이를 구전되던 이야기 속 배경을 특정 지역의 전유물로 연결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 한 고증의 차원이 아닌, 역사문화소재를 공동체의 목적을 위한 적극적인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상상력의 실재화의 의미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브레멘 음악대의 경우도 사실 이야기 속 동물들이 상상 속에 그리던 이상적인 도시로 브레멘이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 브레멘이 그 지역적 배경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또한 실제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sagen)로 원론적인 의미의 메르헨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어쨎든 이들은 메르헨스트라세가 보다 많은 도시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메르헨의 개념을 확장하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20세기에 그림형제와 독일 메르헨을 테마로 활용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이유를,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실재를 구현하고 있느냐의 측면보다는, 그들이 공동으로 문화상품을 만들고 참여 도시들이 문화도시로서 위상을 가지기 위함이라는 취지에서 찾는다면, 크게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그 활용도를 높인다는 측면은 분명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 테마구성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세 번째 구성 포인트인 참여 도시들의 차별적인 테마 구성 및 활용과 연결되어지게 된다.
6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균등하게 그림형제와 독일 메르헨에 관한 테마를 공유하면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사실 메르헨스트라세에 참여하는 개별도시들이 자체적으로 충분한 문화자산을 가지고 운영할 능력을 가진다면 굳이 공동체를 구성하여 함께 운영할 이유와 명분이 없어 질 것이다. 자체적으로 충분한 문화자산이나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카셀, 하나우, 브레멘 같은 도시들도, 로마, 파리, 런던 등 상대적으로 문화관광이 융성한 유럽 내 국가나 도시들에 비하면 인지도와 실질 관광수익이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몇몇 대도시를 잇는 중간에 위치한 인구 5천에서 1만 명 정도 규모의 소도시들은 외부에 자신들을 알릴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메르헨스트라세에 참여하는 도시들은 저마다의 목표와 필요에 의해 함께 하고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문화도시 마케팅의 개념과 접근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테마구성인 참여 도시들의 차별적인 마케팅은 참여 도시들의 규모, 참가 이유 및 목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카셀, 하나우, 마부르크, 브레멘, 하멜른 등 대도시군에 속하는 지역들은 기존 자신들이 가진 문화 자산과 역량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원하고 있으며, 인구 1만 명 내외의 중소도시들은 국내 마케팅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가능한 많은 방문객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도시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다. 메르헨스트라세는 단순히 그림형제와 독일 메르헨의 테마를 공유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를 알리기 위한 공동체가 아니다. 결국 이들이 현재 시점에서 테마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이에 참가하는 개별도시들의 문화도시마케팅을 강화시키기 위함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문화도시 브랜딩을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보다 많은 외부인들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초창기 메르헨스트라세를 준비하던 이들은 이러한 개별도시들의 문화마케팅 요구를 규합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링에 나섰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단편적인 독일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품개발이 아닌, 전체적으로 독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관광 상품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연방정부의 역할을 이끌어 내었다.
즉, 대도시 한 두 곳을 중심으로 한 관광상품 개발이 독일의 역사와 문화를 전반적으로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많은 도시들이 가지는 문화자산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방문객들이 문화소비 취향에 맞춰 여행코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지금까지 이러한 설립취지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협회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화마케팅의 로드맵 또한 중앙정부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유럽, 미국,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을 비롯해, 참가도시들의 문화적인 역량을 홍보할 수 있는 대도시 중심의 해외마케팅과, 캠핑, 글램핑, 자전거 투어 등 국내 및 인근 국가의 방문객들이 자신들의 문화소비 취향에 맞춰 이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선택적으로 지방의 중소도시들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국내마케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메르헨스트라세의 권역별 사례를 살펴보면, 권역별 거점 도시들이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관광 이벤트를 통해 방문객들이 행사 기간 및 계절적 요인에 맞춰 일차적인 여행 일정을 만들고, 주변도시들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구성하는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독일 도시들은 중세 이후 근대도시로 성장하면서, 지형적, 역사문화적 특성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역사 속 도시의 발전은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가지며, 당대의 시대상과 부합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때론 쇠퇴하기도 한다. 특히 메르헨스트라세에 참여하고 있는 독일 중북부의 많은 도시들은 10세기 초중반을 전후하여 태동하고, 근대도시로 성장하면서 그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많은 역사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현재 시점에서 도시의 흥망과 성쇠의 요인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쇠’ 하기도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발전의 시대상은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또 다시 새로운 사이클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현재 기준의 도시규모가 절대적으로 그 도시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문화도시마케팅을 수행하는 커뮤니티와 구성원들의 열정과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메르헨스트라세 참가도시 중 슈타이나우, 알스펠트, 보덴베어더 등 몇몇의 중소도시들이 보여주고 있는 문화마케팅 사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슈타이나우의 공칙 명칭은 ‘Steinau an der strasse, 길 위의 슈타이나우’ 이다. 예부터 동서 독일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하면서 역사 속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던 곳이다. 도시가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10세기 전후한 시기였다고 하는데, 이후 15세기를 넘기며 전성의 시대를 누리게 되었으며, 특히 18세기 괴테가 서쪽의 프랑크푸르트와 동쪽의 바이마르를 오가며 유명해 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시대 그림형제가 당시 법원 행정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것을 테마로 메르헨스트라세에 참여하고 있다. 1900년대 초 나치정권시절 건설되었던 아우토반이 이 지역을 지나지 않으며 교통의 요지로서의 위상은 점점 퇴보했던 것 같고, 현재는 인국 1만 명 내외의 평범한 농촌마을로 변모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메르헨스트라세에 참여하는 인구 1만 명 내외의 도시들은 대부분 자체적인 문화자산을 활용한 역량을 강화하는 쪽에 중심을 두기 보다는, 주변 거점도시들의 테마마케팅과 연대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자연경관을 활용한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슈타이나우는 그림형제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그림형제박물관으로 개조하여, 18-9세기 헤센지역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그림형제가 보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컨셉의 문화교육콘텐츠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진행해 왔다. 이를 위해 메르헨을 테마로 한 인형극을 매주 상연하면서 이를 지역 방송국(헤센방송)과 연계하면서, 주말마다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함께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기존에 진행했던 오프라인 중심의 행사 및 이벤트가 상당히 위축되면서, 예전만큼 많은 방문객이 오가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AR, VR 등 뉴미디어를 활용하여 도시 전체를 ‘디지털 그림형제타운’ 으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을 새롭게 기울이고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노력들을 통해 슈타이나우는 여타의 소도시들과 달리 메르헨스트라세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도시의 위상과 존재감을 외부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알스펠트는 슈타이나우와 기센의 중간 쯤에 위치한, 전형적인 헤센의 모습을 가진 도시이고, 슈타이나우처럼 교통의 요지로 각광을 받으며 중세의 시간을 넘어왔다. 헤센의 중심지역에서 성장한 대부분의 중세 도시들이 그렇듯, 헤센을 비롯한 주변의 공국들이 성장하면서 영역 다툼이 심하게 벌어졌던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흔적을 기반으로 한 문화유산들이 도심 곳곳에 남아있다. 알스펠트는 독일 메르헨과 관련한 직접적인 테마를 공유하기 보다는, 18-9세기 독일 내 가정에서 이루어졌던 어린이 동화교육에 집중하면서 일종의 테마박물관인 ‘메르헨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메르헨하우스는 건물외관을 라푼첼성을 모티브로 꾸며 놓았으며, 박물관 안쪽에는 메르헨과 관련한 인형과 다양한 오브제를 전시하면서 당대 독일 가정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셀 권역의 트렌델부르크와 자바부르크처럼 대도시와 연계하는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파생 테마를 중심으로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의 도시임을 새롭게 각인시키면서 문화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은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하멜른 인근의 보덴베어더는 우리에게 ‘허풍쟁이 남작의 모헙’으로 알려진 문샤우센(Muenschausen)의 고향이다. 슈타이나우나 알스펠트와 달리 문샤우센은 니더작센의 도시이고, 테마 또한 그림형제나 독일메르헨과는 조금 결이 다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메르헨스트라세는 직접적으로 그림형제와 독일 메르헨과 관련이 있는 도시만을 참여 시키지 않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독일 메르헨의 범주를 메르헨, 전설, 설화 등 오래된 독일의 이야기로 개념을 확장시켜 놓았다. 보덴베어더는 하멜른 권역의 도시(Hameln Pyrmont)로서, 베저강 유역의 연합체(Weserbergland)에도 함께 하면서, 문샤우센이라는 자체 문화자산을 활용한 차별적인 문화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메르헨스트라세의 도시연합은 참가하는 도시들을 물리적인 선의 개념으로 연결하는 나열적인 의미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체 밑에 또 다른 특성에 따라 하부단의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처럼 상호 유기적인 문화 소통체의 모습을 통해 그 효율성을 배가하고 있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체가 번성할 수 있는 요인은, 공동체가 참여도시의 기대에 얼마는 부응하는 요인들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지만, 참여하는 개별도시들 또한 이를 활용해 어떤 노력을 어떻게 기울이고 있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메르헨스트라세는 프랑크푸르트 인근 하나우에서 출발해 슈타이나우, 마부르크, 카셀을 거쳐 하멜른과 브레멘까지 600여 km로 이어지는데, 주 단위로 보면 크게 헤센주와 니더작센주의 도시들이 함께 하고 있다. (브레멘은 중세 이후 한자동맹에 참가하면서 자유도시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지형상 니더작센주에 속하지만,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은 전체 참가도시들을 아우르는 메인 테마이지만, 이들 도시들이 가진 다양한 역사, 문화적 배경과 자산은 또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 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문화관광을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 초창기 그림형제가 채록한 메르헨이 북부 헤센에 떠돌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림형제와 독일메르헨의 테마는 헤센 주의 특성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이에 하멜른과 브레멘의 테마는 메르헨의 테마확장과 도시마케팅 활성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니더작센은 분명 헤센과는 많이 다른 역사,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발전해 있으며, 이둘 도시들의 일상과 시스템 또한 제법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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