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3. 8. : 카셀_Grimmwelt
2023년 8월, 다시 카셀(Kassel)이다. 지난 겨울, 열 네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처음 떠나왔던 메르헨캠프가, 한국을 떠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고 하나우를 거치는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은데, 슈타이나우를 거쳐 카셀에 도착하고는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여름 학생들과 두 번 째 캠프를 준비하면서, 카셀부터의 구간을 아예 ‘stage 2’ 로 명명하였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독일도시들에 적응하면서 이런저런 아이스 브레이킹을 거치는 stage 1을 지나 카셀에 넘어오면, 본격적인 메르헨스트라세와의 만남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론 메르헨스트라세와 처음 인연이 시작된 2016년부터 매번 독일을 방문할 때 마다 찾았던 도시가 카셀인데, 그간의 익숙함이 이런 편안함을 만들어내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이곳을 찾았던 그때도, 유난히 카셀은 꽤나 오래된 편안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그런데 사실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카셀은 인구가 20만 명 정도로, 우리로 치면 지방중소도시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독일의 여타 도시들과 비교하면 꽤나 큰 규모를 가진 도시에 속한다. 독일의 도시들을 인구 규모로 구분하면,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베를린이 360만 명, 독일 제 2의 도시이자 한자동맹도시인 함부르크가 200만 명, 남부 바이에른의 최대도시 뮌헨이 160만 명 정도로 대도시에 속한다. 이외에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들인 프랑크푸르트, 하노버, 쾰른, 뒤셀도르프, 슈투트가르트 정도의 도시들이 50-100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주 단위 대표 도시들이다. 사실 독일의 도시들은 저마다 그 성격과 기능이 달라 인구 규모만 가지고 대, 중, 소도시로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이곳 카셀 또한, 지형적으로는 북부 헤센의 중심도시이자, 헤센 주 연방법원을 비롯해 주 단위의 관공서들이 밀집되어 있는 행정도시이며, 역사적으로 중세 이후 독일이 도시국가에서 통일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18-19세기 북부 헤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이러한 격변의 순간에 그림형제가 이곳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곳에 오면 도시전체가 하나의 개방된 박물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시 곳곳의 옛스럽고 모던한 느낌과 분위기에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 내가 그리 느껴지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도시만의 묘한 매력이 있긴 한 것 같다. 아직 카셀의 구도심과 신도심을 가로 질러 흐르는 풀다(Fulda) 강 넘어 신도심의 일상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카셀의 구도심은 단순히 관광객과 이방인을 위한 역사문화유적지만 즐비한 곳이 아니라, 이 안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오래된 카셀 중앙역에 내려 광장을 따라 다운타운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오래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계단이 이방인을 도심 속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중간쯤에 오래된 듯 보이는 조형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실질적으로 이 조형물은 2017년 도큐멘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도 느낌은 꽤나 엔틱하기만 하다. 그리고 조형물 안에 쓰여진 문구가 이곳을 처음 찾은 이방인을 친근하게 맞이하는 듯도 싶고, 아니면 전형적인 독일 사람들처럼 무심히 그저 툭 한마디 내 뱉는 것도 같다. ‘당신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어쩌면 운명일지 모른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렇게 계단길(treppen)을 내려와 도심 중앙에서 만나게 되는 프레드리히(fredrich platz) 광장. 이곳은 1950년대부터 카셀시가 문화도시마케팅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하고 진행해 온 대표적인 문화랜드마크인 도큐멘타(documenta)의 메인 공간이다. 도큐멘타는 1955년 시작해 5년마다 열리는 전세계적인 현대미술전시회인데, 15회 행사가 열린 2022년의 여름은 도시 전체가 실내외를 막론하고 축제의 장이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화 그룹인 ‘루앙루파(Ruangrupa)’가 행사전체의 연출과 진행을 맡게 되면서 지난번과는 달리 제3세계 느낌과 친환경 컨셉의 콘텐츠가 많이 전시되었다. 이러한 축제의 열기는 프레드리히 광장을 지나 오랑게리 성(Orangerie Schloss)과 칼스아우에 주립공원(Karlsaue Staat Park)을 지나며 절정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메르헨캠프를 준비하는 일정 때문에 세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2017년에 있었던 행사를 회고해 보면 아마도 이곳 뿐 아니라 카셀 전역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으로 충분히 예견된다.
오랑게리성과 칼스아우에 주립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면 대략적으로 구도심을 투어를 하게 되는데, 다시 구도심 중앙 쪽으로 오르며 국립현대미술관 앞을 지나며 구름다리를 하나 건너면, 저 멀리 카셀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헤라클라스 상이 보이는 언덕을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 몇 해 전 현대식 건물을 지으며 새롭게 자리하게 된 그림형제 박물관(Grimmwelt)에 이르게 된다. 그림형제가 카셀 공국 궁중사서로 일하면서 실제로 거주 했던 집 터 위에 마련했던 예전 그림형제박물관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하는데, 새로운 건물에서 불과 20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 어디쯤에 그림형제가 실제로 살았고, 저 멀리 보이는 왕궁에 매번 힘들게 출퇴근을 하고 돌아와 주야로 일상생활을 했던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새로 지어진 세련된 독일식 건물조차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미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내겐 꽤나 익숙하기도 하지만, Grimmwelt는 ‘그림형제의 세상’ 이라는 말 그대로, 여전히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곳이다. 내가 9000여 km를 날아와 메르헨스트라세를 돌아다니는 이유, 참가 도시들과 협업하는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이곳까지 데리고 와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이 함축적으로 설명되어지는 이 곳에서, 학생들도 그 의미를 조금씩 알아갔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설램의 긴장감마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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